상기님의 글 중에서
초동지절에 가내 두루 평안 하시고 건승하시기를 빕니다. 소인이 얼음물로 입을 헹구고 아뢰옵나이다. 무자년 해가 저물며 황국 단풍 다 저버렸으니, 월백설백 천지백 하기 전에 후안무치로 존경하올 지산 회원님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시골의 벽촌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일찍이 상업에 눈을 뜬 아버님의 의지로 초딩 때 대처로 전학하여 학업에 골몰하였으나 여러 형제와 또 다르게 학문에 재능이 없고 속내가 옹졸하였습니다. 미리 됨됨이를 간파하신 선친께서 가업을 계승하라는 명분으로 저자거리에 소인을 던졌습니다. 결혼하여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배우기를 게을리 하고 놀기만을 조아하던 저에게 이웃한 친구가 있어 사흘을 멀다하고 왕래하던 터에 참 좋은 지산회원님을 만났습니다. 마침 낚시만을 좋아하는 편협한 취미에서 일탈하려던 생각이 있었던지라 등산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꽃 피고 새가 울며 녹음방초 우거졌다가 만고강산이 붉게 또는 누르게 변하는 것을 보며 시절인연이 뭔가도 느끼었습니다. 노동과 얕은꾀로 가족을 부양하며 다달이 산행을 기다리고 즐겼습니다. 해를 거듭 할 수 록 종아리에 힘이 붙고 마음도 대담해졌습니다. 고향의 눈 덮인 보현산을 오를 때는 레저가 신앙이 되어 어린 아이들을 동반하였지요. 최 형이 보온 도시락의 밥을 아이들에게 건네주실 때는 삭풍도 일순간 멈추더이다. 어느 해 봄날 철쭉이 요란하던 황매산에서 민수를 목마 태우고 놀던 때나 장마철 치밭목 산장의 촛불아래 마신 원두커피의 향기는 생각만으로 진하게 맡아집니다. 충청도 초정리 사이다 탕의 찌릿함이나 팔공산 얼어붙은 바위의 냉기가 장갑 낀 손끝에 지금도 아리하게 느껴집니다.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제주도를 부부동반으로 유람 할 때 는 오로지 고마운 마음 뿐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둘러 고인이 된 김 기성님과 지리산의 육덕에 발을 내밀기도 하고 흰 눈이 편편애애 내리는 태백산에서 아름드리 주목을 님 인 양 얼싸안기도 하였습니다. 손꼽을 수 없는 수많은 추억들이 아름답기만 한데, 소인은 여기서 작별을 고 하나이다. 여러 회원님의 각별하신 배려를 사족으로 감당키 어려우며 본 지산산악회에 장차 해로움이 되므로 탈퇴 하나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에게 베풀어 주신 후의를 스스로 끝까지 갚지 못하고 뒷모습을 보이는 부끄러움이나이다. 거듭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며, 모든 회원님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2008년 12월 16일 김 상기 배상 & 수일 내 위 글은 스스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