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선수에 대한 추억
이정훈(45) 천안 북일고 야구부 감독은 현역 시절 '악바리'라는 선수로 명성을 떨쳤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171cm 73kg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해(1987년) 타율 3할3푼5리(370타수 124안타) 4홈런 34타점 56득점 20도루로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쥔 뒤 2년 연속 타격 1위(1991, 1992년), 네 차례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1988, 1990, 1991, 1992년)를 차지하며 국내 최고의 교타자로 군림했다.
이 감독은 1992년 타율 3할6푼(369타수 133안타) 25홈런 68타점 89득점 21도루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거뒀으나 발바닥과 손목 인대 부상에 시달리며 1995년 삼성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1997년 OB(두산 전신)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 감독은 은퇴 후 한화와 LG의 코치로 활동한 뒤 지난달 천안 북일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다음은 이 감독과 일문일답.
-악바리라고 불리게 된 계기는.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인상과 강한 승부욕이 플레이에서 그대로 보여져 그런 것 같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 들어오더라도 자신과 약속했던 훈련량은 다 소화했다.
-연고 구단 삼성의 지명을 받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 않았나.
▲내가 삼성에 입단했다면 신인왕과 연속 안타 기록을 수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삼성 외야진은 허규옥, 장태수, 장효조 등 뛰어난 선배들이 많아 내가 설 자리가 좁았다. 내심 삼성에서 지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또한 외야수가 많아 투수를 선택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신인 첫해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나무 배트로 연습해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배성서 감독님이 시범 경기부터 줄곧 주전 선수로 기용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삼성에 지명받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지만 학창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강기웅, 류중일보다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졌다.
-빙그레 다이나마이트 삼총사 가운데 개인 성적이 가장 뛰어나다.
▲내가 다이나마이트 타선 가운데 팀 공헌도가 가장 높았다. 1번과 3번을 오가며 홈런도 곧잘 때렸다.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 다이나마이트 타선의 선봉장은 이정훈이다. 이정훈이 없으면 다이나마이트 타선은 생각할 수 없다고. 나는 상대팀의 1,2선발과 맞붙어도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큰 점수차에서 등판하는 패전 처리 투수들이 무서웠다. 그 친구들은 '칠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겁없이 몸쪽 공을 던졌다.
-1993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부산 송도에서 며칠간 머무르며 한해를 정리하고 다음 시즌을 기약했
다. 1992년 겨울에는 두려울게 없었다. 다음 시즌에 장효조 선배가 세운 기록을 다 갈아치우겠다는 자신감도 가득했다. 내가 생각해도 스윙도 완벽했고 수싸움도 자신있었다. 하지만 동계 훈련 때 러닝을 무리하게 하는 바람에 왼쪽 발바닥 부상을 당했다. 전훈에 참가하지 못해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에 깁스를 푼 뒤 하루에 300~400개씩 스윙했지만 손목 인대를 다치고 말았다. 지금처럼 의료 시설과 트레이너가 있었다면 거뜬히 재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든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프로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는 운동하면서 한계에 도달하면 즐기는 마음으로 훈련했다. 나는 힘들때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래서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선수들은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목표는 피와 땀 그리고 고통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프로 선수라면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야 한다. 우리는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면 정말 화가 나서 투수 얼굴을 떠올리며 분이 풀릴때까지 스윙했다. 적어도 프로 선수라면 젊은 나이에 목숨은 바치지 못하더라도 미쳐서 야구할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그리고 선수층이 얇아 대형 선수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악바리라는 별명을 물려주고 싶은 선수를 손꼽는다면.
▲SK 와이번스 정근우(26, 내야수)가 독하게 야구하더라. 체격도 작지만 야구하는 스타일도 그렇다. 공을 맞고 나가거나 2루 도루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아마 사령탑으로 부임한 소감은.
▲프로야구 500만 관중 달성과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마 야구가 발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 이곳에 처음 왔을때 선수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많이 낮았는데 좋아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 학교가 고교 야구팀 가운데 가장 많이 훈련할 것 같다. SK 못지 않을 만큼 훈련시킨다. 고교 선수들은 연습을 많이 할수록 실력이 좋아진다. 투수들만 좋아진다면 내년에 해볼만하다. 선수들과 처음 만나 '너희들이 삼진이나 병살을 당하거나 홈런을 맞아도 혼내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과정이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실패하는 것은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연습 경기 때도 덜덜 떨면서 긴장하는걸 보니 마음 아프더라. 선수들에게 '그래 잘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많이 불어 넣으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