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민족
호암 100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IT기업 성장
솔도미
2011. 9. 13. 21:58
호암 100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IT기업 성장
숫자 100으로 본 재계 | |
기사입력 2010.02.17 04:00:14 | 최종수정 2010.05.31 16:26:04 | ![]() ![]() ![]() ![]() |
◆ 한국경제 100년, 기업사 100년 ◆

창업 당시 이병철 회장.
100년 전인 1910년 2월 12일.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태어났다. 1910년은 한일합방 조약이 조인된 해이기도 하다. 이병철 회장은 38년 대구의 661㎡(200평) 남짓한 가게에서 출발해, 타계한 87년에는 37개 계열사에 연매출 14조원을 기록하는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한국 기업사의 산증인이다. 삼성그룹은 이후 200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의 IT기업이 됐다.
40대에는 무역과 제조업을 본격화했다. 48년 서울 종로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우면서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삼성물산공사는 창업 1년 만에 무역업계 1위로 떠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가 삼성물산을 설립하고, 이후 제일제당을 만들면서 한국 최고 기업가로 부상했다. 5·16 군사 쿠데타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과 맞물려 60년대에도 동방생명, 화신백화점을 인수해 사업을 확대했다. 69년에는 마침내 전자사업에 뛰어들었다.
40대에는 무역과 제조업을 본격화했다. 48년 서울 종로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우면서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삼성물산공사는 창업 1년 만에 무역업계 1위로 떠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가 삼성물산을 설립하고, 이후 제일제당을 만들면서 한국 최고 기업가로 부상했다. 5·16 군사 쿠데타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과 맞물려 60년대에도 동방생명, 화신백화점을 인수해 사업을 확대했다. 69년에는 마침내 전자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건설현장 방문(1983년).
만 73세가 되던 83년에는 반도체사업을 공식화했다. 첨단산업인 데다 막대한 투자비가 든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다.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는 국가적 사업이고 미래산업의 총아”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호암은 세상을 떠났지만 반도체는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으로 떠올랐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재제일’로 요약된다.
삼성상회 시절 대학 친구인 이순근 씨를 지배인으로 기용하면서 ‘의인물용 용인물의(擬人勿用 用人勿疑)’라는 인사 원칙을 세운 일화는 유명하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재제일’로 요약된다.
삼성상회 시절 대학 친구인 이순근 씨를 지배인으로 기용하면서 ‘의인물용 용인물의(擬人勿用 用人勿疑)’라는 인사 원칙을 세운 일화는 유명하다.

호암은 생전에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 데 시간을 보냈다. 기업이 곧 사람이다”라고 수시로 말한 바 있다. 실제 그는 57년 국내 기업 최초로 공채를 실시했다. 처음으로 기업 연수원을 세운 사람도 호암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호암의 인재경영에 대해 “호암은 사업이란 사람의 일이란 것을 잘 알고 계셨던 분이다. 삼성사관학교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인재에 대한 호암의 열정은 기업사에 하나의 기업문화를 일궈냈다”고 평했다.
사업 보국 또한 호암의 업적이다.
무역업으로 성공한 그가 제조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암은 제조업 진출에 대해 “국민이 소비하는 물자를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는 언제까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쓰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등을 잇따라 설립한 것도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었다. 77년 반도체사업 진출을 결정한 일 또한 같은 맥락이다. 호암은 생애 후반 10년을 기술에 집중했다.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기치 아래 기술혁신을 강조했다.
100년 넘은 기업은 두산·동화약품
1896년 박승직상점을 시작으로 한 두산은 96년 한국 기네스협회로부터 최고기업 인증서를 받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기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기업의 수명이 당시 30년이었던 것에 비춰봤을 때도 상당한 역사지만 지금도 국내에서 100년을 넘은 기업은 두산과 함께 동화약품을 꼽는 정도다.
업종별 기록으로 봤을 때 가장 먼저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것은 섬유산업이다. 섬유산업은 87년 단일 업종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당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효자 산업이었다. 그러나 단일제조업체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 수상한 업체는 섬유기업이 아닌 삼성전자다. 삼성전자가 종합상사가 아닌 단일제조업체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탑’을 받게 된 것은 94년이다.
55년 100대 기업 중 남은 곳은 7곳
한편 55년 100대 기업 중 살아남은 기업은 7곳. 구제금융을 통해 회생한 은행 등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7개 기업은 CJ(제일제당), LG화학, 현대해상(구 동방해상보험), 한진중공업(구 대한조선), 대림산업, 한화, 한국전력 등이다.
■ 인터뷰 : 이한구 수원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호암·아산의 기업가 정신 되새겨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호암의 인재경영에 대해 “호암은 사업이란 사람의 일이란 것을 잘 알고 계셨던 분이다. 삼성사관학교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인재에 대한 호암의 열정은 기업사에 하나의 기업문화를 일궈냈다”고 평했다.
사업 보국 또한 호암의 업적이다.
무역업으로 성공한 그가 제조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암은 제조업 진출에 대해 “국민이 소비하는 물자를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는 언제까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쓰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등을 잇따라 설립한 것도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었다. 77년 반도체사업 진출을 결정한 일 또한 같은 맥락이다. 호암은 생애 후반 10년을 기술에 집중했다.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기치 아래 기술혁신을 강조했다.
100년 넘은 기업은 두산·동화약품
1896년 박승직상점을 시작으로 한 두산은 96년 한국 기네스협회로부터 최고기업 인증서를 받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기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기업의 수명이 당시 30년이었던 것에 비춰봤을 때도 상당한 역사지만 지금도 국내에서 100년을 넘은 기업은 두산과 함께 동화약품을 꼽는 정도다.
업종별 기록으로 봤을 때 가장 먼저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것은 섬유산업이다. 섬유산업은 87년 단일 업종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당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효자 산업이었다. 그러나 단일제조업체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 수상한 업체는 섬유기업이 아닌 삼성전자다. 삼성전자가 종합상사가 아닌 단일제조업체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탑’을 받게 된 것은 94년이다.
55년 100대 기업 중 남은 곳은 7곳
한편 55년 100대 기업 중 살아남은 기업은 7곳. 구제금융을 통해 회생한 은행 등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7개 기업은 CJ(제일제당), LG화학, 현대해상(구 동방해상보험), 한진중공업(구 대한조선), 대림산업, 한화, 한국전력 등이다.
■ 인터뷰 : 이한구 수원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호암·아산의 기업가 정신 되새겨야

▶ 올해로 호암 고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삼성그룹의 성장과정을 짚어주신다면.
-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 역사는 100년을 훨씬 넘었지요. 1876년 개항 이후 기업 조직이 출현한 걸 보면 150년 정도는 됐다고 봅니다. 이병철 회장은 1938년 대구 서문시장에 조그마한 가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삼성그룹이 매출 20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걸 보면 놀랍지요.
물론 고비도 많았습니다. ‘한비 사건’이 대표적이지요. 호암은 박정희 정부 지원과 일본 차관을 얻어 세계 최대 규모인 연산 33만톤 규모의 비료공장 건설에 나섰지요. 하지만 이때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밀수입했다는 논란이 커졌습니다. 결국 한국비료 공장을 국가에 헌납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전자사업, 반도체사업에 뛰어든 게 삼성 도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70대인 호암이 83년부터 모든 준비를 거쳐 반도체사업 투자를 시작했고 우려와 달리 반도체사업은 승승장구하게 됐습니다. 이후 삼성그룹은 시스템 경영을 통해 ‘준비된 기업’이란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이병철,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지는 경영진의 능력도 위기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아산 정주영 회장 역시 탁월한 리더십을 갖췄고요.
▶ 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기업들도 적지 않은데요.
- 전두환 정부 시절 재계 7위까지 올랐다 85년 해체된 국제그룹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사실상 기업이 성장하는 데는 내부 전략도 중요하지만 정부 규제나 사회 분위기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지요. 물론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기업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대체로 재무구조가 탄탄했다는 점이지요. 공격경영을 자제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며 자금관리를 철저히 해온 덕분입니다. 한때 잘나갔던 대우그룹 역시 망하기 직전 재무구조가 취약했다는 게 이를 증명합니다. 중공업으로 주력사업을 바꾸면서 자본 회수기간이 늦어져 위기대응능력을 갖출 틈이 없었어요.
▶ 기업들은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 국가,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 지식기반산업을 강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이를 통해 ‘캐시카우’를 찾아야 해요. 전통 제조업 위기 얘기가 자꾸 나오고 있는데요. 생산기지 국외 이전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앞으로 기업 본사만 한국에 남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경제체질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산업을 발굴해야 합니다.
▶ 기업가정신이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요.
- 초기 한국경제를 지탱했던 기업들의 헝그리정신이 사라지고 있지요. 앞으로 기업가정신이 쇠퇴한다면 삼성,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도태된 건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이었는데요. 중소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쉽게 삼킬 만큼 시장규모가 작았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만 더욱 커졌습니다. ‘뉴 삼성’ ‘뉴 현대차’를 키우려면 논란이 있더라도 정부가 이중잣대를 들이대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국외에 진출해 ‘한국형 경영’을 지속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내수시장에서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김경민 기자)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 정고은 기자 chungke@mk.co.kr]
-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 역사는 100년을 훨씬 넘었지요. 1876년 개항 이후 기업 조직이 출현한 걸 보면 150년 정도는 됐다고 봅니다. 이병철 회장은 1938년 대구 서문시장에 조그마한 가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삼성그룹이 매출 20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걸 보면 놀랍지요.
물론 고비도 많았습니다. ‘한비 사건’이 대표적이지요. 호암은 박정희 정부 지원과 일본 차관을 얻어 세계 최대 규모인 연산 33만톤 규모의 비료공장 건설에 나섰지요. 하지만 이때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밀수입했다는 논란이 커졌습니다. 결국 한국비료 공장을 국가에 헌납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전자사업, 반도체사업에 뛰어든 게 삼성 도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70대인 호암이 83년부터 모든 준비를 거쳐 반도체사업 투자를 시작했고 우려와 달리 반도체사업은 승승장구하게 됐습니다. 이후 삼성그룹은 시스템 경영을 통해 ‘준비된 기업’이란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이병철,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지는 경영진의 능력도 위기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아산 정주영 회장 역시 탁월한 리더십을 갖췄고요.
▶ 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기업들도 적지 않은데요.
- 전두환 정부 시절 재계 7위까지 올랐다 85년 해체된 국제그룹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사실상 기업이 성장하는 데는 내부 전략도 중요하지만 정부 규제나 사회 분위기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지요. 물론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기업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대체로 재무구조가 탄탄했다는 점이지요. 공격경영을 자제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며 자금관리를 철저히 해온 덕분입니다. 한때 잘나갔던 대우그룹 역시 망하기 직전 재무구조가 취약했다는 게 이를 증명합니다. 중공업으로 주력사업을 바꾸면서 자본 회수기간이 늦어져 위기대응능력을 갖출 틈이 없었어요.
▶ 기업들은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 국가,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 지식기반산업을 강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이를 통해 ‘캐시카우’를 찾아야 해요. 전통 제조업 위기 얘기가 자꾸 나오고 있는데요. 생산기지 국외 이전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앞으로 기업 본사만 한국에 남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경제체질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산업을 발굴해야 합니다.
▶ 기업가정신이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요.
- 초기 한국경제를 지탱했던 기업들의 헝그리정신이 사라지고 있지요. 앞으로 기업가정신이 쇠퇴한다면 삼성,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도태된 건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이었는데요. 중소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쉽게 삼킬 만큼 시장규모가 작았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만 더욱 커졌습니다. ‘뉴 삼성’ ‘뉴 현대차’를 키우려면 논란이 있더라도 정부가 이중잣대를 들이대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국외에 진출해 ‘한국형 경영’을 지속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내수시장에서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김경민 기자)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 정고은 기자 chungke@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