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교실

백구사

솔도미 2006. 12. 31. 20:49
굳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네 선인들도 처세가 분명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즉사지즉지(仕則仕止則止)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이 필요로 하면 나아가서 봉사하고 쓰임이 끝나면 미련 없이 물러나서 사생활에 묻혔던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처럼 염치 없이 '자리'에 연연하고 분수 없이 명리에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조와 정의에 입각해서 진퇴와 출처를 분명히 했던 것이다.

선비 정신이 충일했던 조선 시대에 주옥같은 전원적 시가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것도 바로 이 같은 시대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12가사 중의 한 곡인 백구사(白鷗詞)는 바로 그 같은 시대 조류의 연장 선상에서 잉태된 전형적인 창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지 마라 너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聖上)이 버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오류춘광(五柳春光) 경(景) 좋은데 백마금편(白馬金鞭) 화유(花遊)가자. 운침벽계(雲沈碧溪) 화홍유록(花紅柳綠)헌데 만학천봉(萬壑千峰) 빛은 새뤄 호중천지(壺中天地) 별건곤(別乾坤)이 여기로다.
고봉만장(高峰萬丈) 청기울(靑氣鬱)헌데, 녹죽창송(綠竹蒼松)은 높기를 다투어 명사 십리에 해당화만 다 피어서 모진 광풍을 견디지 못하여 뚝뚝 떨어져서 아주 펄펄 날아나니 긘들 아니 꽃일러냐.
바위 암상(岩上)에 다람이 기고 시내 계변(溪邊)에 금자라 긴다. 조팝나무에 피죽새 소리며, 함박꽃에 벌이 와서 몸은 둥글고 발은 작으니 제 몸에 못 이겨 동풍이 건 듯 불 제마다, 이리로 접두적 저리로 접두적, 너흘너흘 춤을 추니 긘들 아니 경일러냐.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 사이로 왕래를 허고, 백설 같은 흰 나비는 꽃을 보고 반기어서 날아든다. 두 나래 펼치고 날아든다 떠든다. 까맣게 별같이 높다랗게 달같이 아주 펄펄 날아드니 긘들 아니 경일러냐.


현재 전창되고 있는 백구사의 가사다. 8분 정도에 걸쳐서 유장하게 부르는 이 가사는 모두 세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의 단락은 한문 성구를 많이 사용한 상투적인 문장으로 육중한 무게를 두었다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단락에서는 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법을 사용함으로써 가사의 언어적 이미지의 변화를 꽤해 가고 있다.

백구사의 사설을 이루는 소재는 한마디로 '탐화봉접(探花蜂蝶)'의 일상적 소재다. 그 첫 번째 구절에서는 강풍에 흩날리는 해당화를 제시해 놓았으며 둘째 구절에서는 꽃을 찾는 벌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그렸고, 셋째 구절에서는 접수화(蝶隨花)의 나비의 행색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백구사가 지니는 사설의 특징은 그 허두에서도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원래의 사설은 '백구야 풀풀 나지 마라' 로 시작되지만 노래의 가사에서는 '백구야 풀풀'을 생략하고 '나지 마라'부터 단도직입으로 도입된다. 과감한 생략법을 활용한 것이 한결 별미를 자아낸다.

현재까지 맥이 이어 오는 가사 음악은 모두 열 두 편이다. 정가(正歌)의 '12가사'가 곧 그것이다. 백구사를 비롯해서 황계사(黃鷄詞), 죽지사(竹枝詞), 어부사(漁父詞), 춘면곡(春眠曲), 상사별곡(相思別曲), 길군악, 권주가(勸酒歌), 수양산가(首陽山歌), 처사가(處士歌), 양양가(襄陽歌), 매화타령(梅花打令)이 그 전부이다. 따라서 전통 음악의 정가 분야, 즉 시조, 가사, 가곡의 3개 영역 중에서 가사 음악 부분은 여기 소개된 12편의 음악만을 소화하면 모두 통달한 셈이 된다.

곡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가사 음악의 본령이라면 담담한 속에서 은은하게 감득되는 문학적 향취가 그 맛이라고 하겠다. 바꿔 말하면 서정적인 문학적 운치가 기품 있는 선비 기질과 어우러지면서 잔잔한 선율에 실려 가는 한아(閑雅)한 분위기, 바로 그것이 곧 가사 음악의 본질이며 남다른 개성인 것이다.

굳이 비유하여 말한다면 백자의 맛과 운치,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다. 조선 시대의 시각적 미감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 백자라면, 그 시대의 청각적 예술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담백한 정조의 가사 음악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다.

확실히 가사 음악은 백자를 닮았다. 이미 언급했듯이 판소리의 맛을 투박한 질그릇에 비유하고, 가곡의 특성을 유현심수한 비취빛 청자에 비견한다면, 가사의 음률이 펼쳐 내는 단아한 경지는 영락없이 조선조 백자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다.

우선 평면적인 가락의 전개가 백자의 순박성을 닮았고, 감정의 고양을 절제하는 가사의 곡태는 싱거우리 만큼 수수하고 다소곳한 백자의 자태를 빼닮았다. 뿐만 아니다. 주로 6박 한 장단으로 단조롭게 흘러가는 가사의 리듬은 채색을 배제한 백자의 색상 그것이라고 하겠다. 제법 문학적 향취가 짙은 사설에서부터 사사로운 주변 잡사를 묘사한 사설까지 격의 없이 혼용한 가사 음악의 사설 내용들은 고고한 듯 오만스럽지 않고 낮은 듯 천하지도 않은 백자의 품위 바로 그것의 현현이다.

색깔이 있으되 색깔이 없다고 할 수 있는 백자의 속성처럼, 가락이 있되 출렁대지 않고, 리듬이 있되 기복이 적은 가사 음악의 본령은, 그래서 무색무상의 경지요, 비유비공(非有非空)의 경지인 중도(中道)의 세계요, 중용의 지평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간단한 노래곡 하나이지만 백구사 속에는 지난날의 시대상과 선조들의 인생관과 옛 예인들의 미적 감각이 함께 녹아 흐른다.

세월 따라 강산도 변하지만 세월 따라 우리네 정서적 추이도 많이 바뀐다는 것을 우리는 백구사 한 편을 통해서도 십분 헤아릴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다 같은 '갈매기'라는 소재를 두고도 우리네 선인들은 유유자적하는 은자적 여유를 읊었고, 오늘의 세대는 이별과 눈물의 매개물로 은유하며 애상적으로 노래한다. 똑같이 하늘을 비상하는 흰 갈매기를 두고도 선인들은 '홍진을 다 떨치고 죽장망혜 짚고 신고 거문고 두레메고 서호로 돌아드니, 노화(蘆花)에 떼 많은 갈매기는 제 벗인가 하노라'라고 읊었는가 하면, 출세간(出世間) 했다가 언젠가는 귀향하리라고 맹세한 어느 선비는 '두견아 우지 마라 이제야 내 왔노라. 이화도 피어 있고 새 달도 돋아 있다. 강상에 백구 있으니 맹세풀이 하노라' 하고 뒤늦게나마 지키게 된 은거의 약속을 노래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갈매기 바다 위에 날지 말아요...'라고 노래하거나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하고 울부짖으니 역시 격세의 감을 누를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