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랑

출신고교별 야구올스타 대구상고편

솔도미 2007. 4. 25. 17:12

25. 대구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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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배 : 73,93년 우승,  74,76,78,88년 준우승>
<청룡기 : 50,70,77,99년 우승,  62,66,68,69,98,00년 준우승>
<봉황기 : 73,74년 우승,  75년 준우승>
<황금사자기 : 73,98년 우승,  70,74년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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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 1924년
@우승 - 10회(전국 4위)
@준우승 - 13회
@결승진출회수 - 23회(전국 3위)
@프로선수배출 - 42명(전국 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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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우용득
73 이삼열
74 (석주옥)
75 김한근 장효조
77 송진호 김시진 조호 김정태
78 이만수 오대석 박영진
79 양일환 홍승규

80 권기홍 김준희
81 김성갑 이종두 이강돈 김용국
82 김훈기 이척기
83 이정훈 김정수 최진영
84 강영수
85 강종필
86 김성재
88 김태한 양준혁 김상모
89 이재만 (최한길)
90 이규창 최병국
91 허삼영 전상열 (배종훈)
92 전병호 홍재호
94 (김민우)
95 김승관
96 (권영철)
97 (이동국)
98 (이준민)
99 (권도영) (차일목)
00 장준관 강영식 박기혁
01 이정호
02 (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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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대구야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팀...
늘 비교되는 동향의 경북고가 한때 해체했다가 재창단한데 반해 창단과 함께 단한번도 고교야구의 정상권에서 밀려나 본적이 없는 늘푸른 나무와 같은 팀입니다..

프로야구의 각종 개인타이틀을 고교별로 나누면 아마도 대구상 출신들의 숫자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슈퍼스타들을 많이 배출하였고 특히 타격왕부문에서 지난 20년동안 절반이 넘는 11번의 타이틀을 장효조-이만수-이정훈-양준혁 등의 대구상 출신들이 합작했습니다... (2회이상 타격왕에 오른 선수중 대구상고출신이 아닌 선수는 아직 없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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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국야구사의 포수계보를 잇는 정동진-우용득-이만수 라인이 모두 대구상 출신이며... 김시진과 이정호로 대표되는 투수진 또한 어느 팀에 뒤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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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위의 스타들을 중심으로 대구상의 80년사를 둘러보겠습니다...
흔히 우리 야구사에서 60년대 이전까지 주축이 되던 도시는 부산과 인천이라고 말합니다.. 부산에서는 해방과 함께 여러팀들이 한꺼번에 창단되고.. 인천에서는 인천고와 동산고.. 두팀이 경쟁하듯 야구를 발전시켰으나 대구에서만큼은 대구상고가 거의 유일하게 지역을 대표하면서 65년 경북고가 재창단되기까지 늘상 전국 4강권을 유지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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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상고의 첫우승은 대구상중의 이름이었던 50년의 청룡기로 우승후 1주일만에 터진 6.25전쟁과 함께 당시의 우승주역들의 이름은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대구상고의 이름으로 정상권에 오른 시기는 투수 유영수와 포수 정동진의 배터리가 등장하던 62년 청룡기 준우승시절이고.. 다시 몇 년뒤 김춘길과 우용득 배터리로 68,69년 연속 준우승을 거둔 뒤.. 70년 청룡기에서 정기혁-김종우 배터리로 20년만에 힘겹게 두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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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후반부터 더 이상 대구상은 대구의 일인자가 아니었는데.. 바로 경북고가 재창단하면서 막강한 전력으로 70년대 초반까지 고교야구계를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경북고의 황금시대를 종식시킨 것이 73년도 3관왕의 대구상이었습니다...
이때의 투수는 석주옥이란 선수였고.. 바로 이때 장효조와 김한근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2학년으로 등장합니다...
이듬해인 74년에도 장효조와 김한근.. 그리고 포수 신승식의 활약으로 우승 1회와 준우승 2회를 기록한 대구상고는 이들이 졸업한 76년도에 또다시 김시진-이만수라는 특급배터리를 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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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로에 입단해서도 큰 게임에 약한 징크스를 보여주었던 김시진은 고교시절에도 단 2안타만을 내주고도 대통령배 결승에서 김용남의 군산상고에게 패한 것을 비롯.. 뛰어난 구위를 갖고 있음에도 번번히 정상문턱에서 좌절하면서 청소년대표에서도 탈락한 뒤.. 고교시절 마지막 대회인 우수고교초청대회라는 작은 규모의 대회에서 김빠진 첫 정상에 오르는 씁쓸한 1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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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김시진이 졸업한 뒤.. 박영진이라는 투수가 활약한 77년 청룡기에서 동산고에 낙승하며 가볍게 정상에 오르는데.. 이만수는 이때 타격부문에서 4개의 상을 독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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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의 광주일고와 박노준의 선린상고의 대결로 압축되던 80년... 이종두가 고교야구사상 최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면서 봉황기 4강에 올랐는데.. 준결승에서 8회까지 3:1로 이기면서 복병 배재고에게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하는듯 했지만 9회말 2사후에 상대팀의 에이스인 김진원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패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이종두-김용국-김성갑-이강돈의 라인은 고교정상권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미사일타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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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에는 투수 김태한과 강타자 양준혁이 고3이던 해로.. 이들의 이름값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국대회에서 한번도 4강에조차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들 두명은 대학에 진학해서 기량이 만개한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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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우승을 한차례도 못한 대구상고는 93년.. 투수 김민우와 1루수 김승관의 활약으로 16년만에 모처럼 전국대회 정상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93년은 경북고도 12년만에 우승을 차지한 해로 대구팀들이 모처럼 활기를 띤 해였습니다...
당시 2년생들로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던 양교의 우승주역들.. 경북의 이승엽과 대구상의 김승관은 모두 고교졸업후 삼성에 입단했으나 그 이후의 행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일만큼 갈라졌습니다... 투수까지 겸업하던 이승엽에 비해 타격에서는 김승관이 더 낫다는 평까지 있었기에 김승관의 프로입단후 부진이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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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상은 90년대말 장준관과 이정호라는 걸출한 투수를 연이어 배출하면서 2년연속으로 우승을 추가합니다... 98년 우승감독인 권정화씨의 아들로 현재 고려대 재학중인 유격수 권도영을 비롯.. 장준관과 이정호.. 해태에서 신동주의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강영식.. 롯데의 차세대 유격수 박기혁 등등.. 2년연속 우승의 맴버들답게 무서운 기세로 등장할 대구상의 기대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