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월하의 관산융마
서점에 들렀다가 시디 한 장을 샀다. 작고한 명인 명창들의 한국전통음악을 케이비에스가 시디로 제작한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金 月荷의 시창 관산융마(關山戎馬)가 그것이다.
오래 전에 방송에서 이 곡을 잠깐 듣고 심취한 적이 있으나 그 청아한 가락만 기억할 수 있을 뿐, 시의 내용이나 뜻을 전혀 알 수 없어 아쉬운 감이 있었다.
국악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집에 와서 시디를 들어 보며 모처럼 서도소리 절창에 무한한 감흥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간단하나마 작은 인쇄물에서 작품과 명인의 소개를 곁들이고 있어 얼마쯤 만족하였다. 그러나 한시로 되어 있는 것을 글자 없이 소리로만 들으니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얼마 뒤, 나는 도서관에서 찾아낸 서도소리전집에서 「관산융마」의 한시 전문과 그 해설까지 자세히 적은 내용을 얻을 수 있었다. 큰 보배를 얻은 것처럼 기뻤다.
「 관산융마」는 본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지은 「등악양루 탄관산융마」(登岳陽褸 嘆關山戎馬) -악양루에 올라 전운에 싸인 관산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라는 시인데, 조선 영조 때의 문인 申光洙가 이 시를 모방 인용하여 “관산융마”라는 제목으로 과시에서 개작하여 급제함으로써 일약 유명하게 되었다.
시성으로 불리는 두보는 만년 전란에 쫓기어 객지로 전전하였다. 늙고 병든 몸으로 배 위에서 2년여를 고생스럽게 살다가 천하의 절경이라는 동정호의 악양루에 올라서 전쟁으로 잃은 가족과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이 시를 지었는데,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이 걸작으로 꼽고 있다.
昔聞洞庭湖 今上岳陽樓 吳越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예전에 말로만 듣던 동정호 이제 악양루에 오르니 감개 새로워라 오와 초나라는 동남간에 트여 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들떠있다. 친척과 벗들은 일자 소식이 끊인 지 오래되고 늙고 병든 이 몸은 빈 배에 의지했네 병마 소리 요란한 관산 북쪽 바라보니 난간에 기대여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두보는 이 시를 지으며 외로운 눈물을 흘린 지 2년 만에 59세로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를 연상하면서 듣는 김 월하의 시창 「관산융마」의 가락은 슬픔인 듯 슬프지 않고 기쁨인 듯 흥겹지 않으며, 끊길 듯 이어지고 고요하다가 경천동지 한다. 누구를 그리워하는 듯하다가는 원망하는 것 같고 호소하는 듯하다가는 눈물짓는 듯 하여 미묘한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속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국악에 입문하였다는 김 월하는 본명이 김 순덕 인데, 국악에 들어와서 달을 지고 산다는 의미로 김 월하라는 예명을 지었다 한다.
만년에 시조회 회장이 되어 시조 발전에 공이 컸고 많은 후진을 길러 내었다. 돈도 많이 벌었지만 평생 근검절약하며 예도에 전념하였다. 모은 재산으로 월하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그의 소리는 우리에게 고상하고 우아한 전통 가락을 많이 전해주었는데, 특히 관산융마는 이 가운데 절창 중의 절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가 다음에 이 아름다운 가락을 다시 이어줄 이가 있을까?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고 위대한 것이다.
“秋江이 寂寞魚龍冷하니 人在西風仲宣樓를 ...” 나의 귓전에 오래오래 메아리칠 아름다운 가락을 혼자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마음이다. 나는 부모님 제사 때, 김 월하 선생의 관산융마를 진혼곡으로 틀어드리고 있다. 아버지는 한학이 높으셨다. 내가 일찍 이 음반을 구해서 함께 감상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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