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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100주년] 연보-어록

솔도미 2011. 9. 13. 21:55

[이병철 100주년] 연보-어록
기사입력 2010.02.01 10:00:09 | 최종수정 2010.02.03 15:15:3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범 삼성그룹을 일으킨 호암 이병철은 우리나라 산업사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연보와 남긴 말들을 살펴본다.

◇연보 ▲1910. 2.12 = 경남 의령 출생 ▲1922. 3 = 경남 진양군 지수보통학교 3년 편입 ▲1922. 9 = 서울 수송공립보통학교 편입 ▲1926.12 = 서울 중동중학교 본과 입학 ▲1926.12.5 = 박두을과 혼인 ▲1930. 4 =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경과 입학 ▲1936. 3 = 마산 협동정미소 창업 ▲1936. 8 = 마산 일출자동차 인수 ▲1938. 3.1 = 대구서 삼성상회 창업 ▲1939 = 조선양조 인수 ▲1947. 5 = 서울로 이사 ▲1948.11 = 삼성물산공사 설립 ▲1953. 8.1 = 제일제당 설립 ▲1957. 1.2 = 삼성, 국내 최초로 사원 공채 실시 ▲1957. 2.6 = 한일은행 인수 ▲1958. 2.21 =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인수 ▲1958.10.10 = 상업은행 인수 ▲1959. 4.9 = 조흥은행 인수 ▲1961. 8.16 =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 초대회장 취임 ▲1963. 2.26 = 동양TV방송 설립 ▲1963. 7.15 =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1965. 9.22 = 중앙일보 창간 ▲1967.10.16 = 한국비료 헌납 ▲1969. 1.13 = 삼성전자 설립 ▲1974. 8.5 = 삼성중공업 설립 ▲1982. 4.2 = 美 보스턴대학에서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받음 ▲1983. 9.12 = 삼성반도체, VLSI 공장 기공 ▲1985. 5.21 = 삼성반도체통신, 256KD램 양산공장 준공 ▲1987.11.19 = 별세 <<1961년 8월16일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 제1회 임시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된 이병철>> ◇남긴 말들 ▲경영자는 판단이 빠르고 후퇴도 빨라야 한다.

상황을 판단해서 안 될 것 같으면 남보다 몇 십배 빨리 후퇴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40여개 기업을 일으켰으나 지금 20여개만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정리해가면서 발전해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1975.7 사장단 회의에서) ▲기술혁신을 이룩해 보다 좋은 상품을 제일 먼저 시장에 내놓고 고용과 소득의 증대를 가져오고, 경영의 합리화로 많은 잉여금을 내서 기업확장의 재원을 얻음으로써 나아가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 기업인의 본분이고 기업인의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업인의 사회에 대한 기여도는 사업의 업종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경영의 견실성과 혁신적인 창조성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1976. 6 서울경제신문 '재계회고'에서) <<1986년 2월12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희수연 겸 `호암자전' 출판기념회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축배를 들고 있는 모습>>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기업의 여건을 잘못 판단하거나 기회를 잘못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래서 10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12의 능력을 발휘하는가하면, 10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3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시운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시운을 잘 타고 못 타는 것도 결국 능력에 달려 있다.

(1976. 6 서울경제신문 '재계회고'에서) ▲통합되기 어려운 것을 통합시키는 축은 창조적 능동성이며, 그것은 오늘과 내일의 세계를 앞장서서 살아가려는 민족정신으로 응결된 도덕적 에너지다.

(1978.8 '당면한 경제정책상의 과제'에서) ▲사람이 기업을 하는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금전욕을 뛰어넘는 창조적 충동이라고 할까, 아무튼 무엇이든지 값어치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앞장서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본능과 이에 따르려는 의욕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 정신이란 바로 이러한 본능과 사회적 책임감이 잘 화합하여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1980.2.2 간담회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압력을 받는 수가 있다.

물건을 달라는 것은 주었으나 내가 길러온 사람을 달라는 것은 주지 않아왔다.

기업은 바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1982.2.3 용인 회의에서)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세간에서 자주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이 이상 즐거운 일은 없다.

(1982.4.2 美 보스턴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기념강연에서)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게 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나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1983. 6.30 반도체 회의에서) ▲특정상품이나 사업이 정상에 올랐을 때 다른 상품이나 다른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1982.3.28 미국 워싱턴에서) ▲삼성이 이번에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충분한 투자여력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오로지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을 성공시켜야만 첨단산업을 꽃피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삼성의 모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이 사업의 추진을 결심했던 것이다.

(1984.5.17 기흥 VLSI 공장 준공식에서) ▲돈이란 쓸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고 결국 내가 돈을 버는 것은 국가의 재산이니 국가를 위해서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985.4.22 KBS 방송대담에서) jski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